字는 자명(子明), 號는 강호산인(江湖散人). 해동공자 문헌공 諱 충(冲)의 13世孫 이요, 조부는 한성윤(漢城尹;현 서울시장)을 지내신 諱 안해(安海)이시며, 예빈시소윤(禮賓寺少尹)을 지내신 諱 하(荷)공의 큰 아드님으로 태어나, 世宗27년(서기1445) 10월 23일 별세하셨다. ◯조선조 태종14년(1414)에 사마시(司馬試 生員)에, 세종1년(1419)에 文科에 급제 후 홍문관(弘文館)에 들어가시고 세종9년(1427)에 교리(校理)로서 중시(重試)에 입격되어 집현전(集賢殿)에 발탁되셨다. 벼슬은 집현전부제학 겸지제교경연참찬관춘추관편수관(集賢殿副提學겸知製敎經筵參撰官春秋館編修官), 세자시강원좌보덕(世子侍講院左輔德) 등의 직무를 맡으셨다. 그리고 세종21년 6월에는 강원도관찰사겸병마절도사(江原道觀察使겸兵馬節度使)로 일년여 동안 외직으로 나가셨다가 이듬해 7월에 세종의 부름을 받고 다시 집현전 부제학으로 돌아오셨다. 세종은 공을 임용하여 항상 善을 권장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를 강(講)하는 직책의 우두머리에 두고 군주의 잘못된 일을 시정하게 하시니 공은 성세(盛世)의 명신이라 하겠다. 그 후 세종26년 2월 20일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논박하는 상소를 올린 일로 立朝24년을 끝으로 향리로 은퇴하신 후 이듬해 10월에 별세하셨다.
최광대
[ 부제학 ] 조선시대 홍문관의 구성원은 영사(領事:정l품) ·대제학(大提學:정2품) ·제학(提學:종2품) ·부제학(副提學:정3품) ·직제학(直提學:정3품) ·전한(典翰:종3품) ·응교(應敎:정4품) ·부응교(副應敎:종4품) 각 l명, 교리(校理:정5품) ·부교리(副校理:종5품) ·수찬(修撰:정6품) ·부수찬(종6품) 각 2명, 박사(博士:정 7품) ·저작(著作:정8품) 각1명, 정자(正字:정9품) 등인데, 3정승을 비롯해서 경연청(經筵廳)과 춘추관(春秋館) 등의 관원들이 이를 겸직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실제 책임을 맡은 것은 부제학이었고 이를 보통 홍문관의 장관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부제학은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지제교(知製敎) 등을 겸해 왕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고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을 관리하면서, 삼사(三司) 장관의 1명으로 언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현재의 직제와 비교하면 차관급이라고 보면 되는데 실세라는 의미에서 ‘차관’보다 더 권력이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0-11-07
최재만
광대 홍보국장님, 애 많이 쓰십니다. 근데 확인을 좀 하시고 올려주심이 좋겠네요. 이렇게 올려 놓으시면 휘 온 할아버지의 판리부사 짝 납니다.
2010-11-08
최영길
우리대종회 홍보국장님께서 이렇게 라도 관심을 갖어주시는것은 대종회 앞날을 봐서는 무척 발전적일겁니다. 아주 좋은현상이라여겨집니다. 열심히 하시는모습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홍보국장님 어찌 봉작을 한 제사진은 없는지요? ㅎㅎ 그렇게 광대씨는 제가 미우신가요? 사진이나와도 그만이고 않나와도 그만이지만 광대종친과는 분명하게 풀어야할 과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려 ! ^^ 환절기 감기조심하시고 지금보다더 발전되는 모습 종친들에게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수고하십시요.
2010-11-08
최영길
광대국장님의 해설에 첨언 합니다. 지제교란? 조선 시대 교서(敎書) 등을 기초하여 올렸던 관직. 고려 시대의 지제고(知制誥)가 개칭된 것으로, 국초에는 승정원(承政院)과 사간원(司諫院)의 관원이 지제교를 겸하여 내지제교(內知製敎)라 하고, 문관 10인을 따로 선정하여 외지제교(外知製敎)로 함. 세종(世宗) 때 집현전(集賢殿)이 설치되자 집현전 학사가 내지제교를 겸하였고, 집현전이 혁파된 후에는 홍문관(弘文館)의 부제학(副提學) 이하 부수찬(副修贊) 까지의 관원 13인 모두가 지제교를 겸하였으며 별도로 6품 이상의 문관을 선정하여 지제교를 겸임시킴. 18세기 후반에는 홍문관 관원으로 지제교를 겸할 경우 내지제교, 대제학(大提學)이 이조 판서(吏曹判書)와 상의하여 6품 이상 문관으로 지제교를 겸임시킨 경우 외지제교라 칭하고 규장각(奎章閣)의 직제학 이하 관원은 모두 외지제교를 겸임하였음.